주님 안에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약 2024년 전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하늘을 밀어 제치시고 내려오셨다”(시편18,9)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신조’ 3조에서 고백하듯, 하느님의 아들이자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성령으로 또 동정녀 마리아께 육신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시간을 초월하여 태어나십니다. 바로 ‘오늘’도 태어나십니다! “오늘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시는” 것은,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 영적인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영혼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항상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든 이에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하느님이자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열렬한 사랑꾼’(시나이의 성 요한)으로서 우리 각 개인의 영혼의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시지만, 우리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그저 문밖에서 기다리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마음에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는 이의 마음속에 태어나지 않으시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때 주신 자유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웃을 미워하고 십자가에 달린 사랑을 기준으로 살아가지 않는 이의 마음속에 태어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며 겸손이라는 향기로운 꽃을 가꾸지 않는 이의 마음속에 태어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지었을 때 회개라는 거룩한 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죄악된 욕망을 고집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닌 자기 뜻을 따르는 이의 마음속에 태어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전쟁, 폭력, 불평등, 인종차별, 사회적 불의, 환경 파괴를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지지하는 이의 마음속에 태어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유와 희생적인 사랑과 겸손과 회개로, 또 우리 시대의 사회 문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맞이합시다. 그러면 하느님의 성육신을 통해 우리도 ‘신화(神化)’할 수 있을 것입니다(성 아타나시오스). 우리 이웃들과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 먼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시다. 그리하여 이웃들에게 “오늘 밤 구세주께서 나셨습니다”라는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루가 2,10-11).
이렇게 하면 우리도 평생 하느님의 성육신을 찬양하며, “천군 천사와 함께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구원!’”이라고 찬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루가 2,13-14 참조).
주님 안에 있는 우리의 귀중한 성직자들과 협력자들을 대표하여, 여러분 모두 축복된 성탄절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이 땅에 태어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한없는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의 대주교이자 일본의 엑사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