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로마-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이자 세계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온 교회에 임하길 기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극히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시작이 없으신 ‘말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낳으러” 오신 성모님과 함께 여행하며, 거룩한 아기를 모시기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 베들레헴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한번 사랑의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한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이 세상 구세주께서 육화하시는 대축일로 향하는 올해의 여정은 현재의 전세계적 전염병이 낳은 외부 조건으로 인해 예년과는 달랐습니다. 우리의 교회 생활과 예배 참여, 교회의 사목 활동, 정교회 신앙을 세상으로 증언하는 일들은 모두 보건 방역지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갖는 가장 깊은 관계, 그리스도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 “필요한 한 가지”(루가 10:42)에 바치는 우리의 헌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성탄절은 본래의 정체성을 잃었고, 이 거룩한 날은 우리가 하느님의 육화의 “영원한 신비”(고백자 성 막시모스, 덕과 악에 관해, PG 90,1184)를 기념한다는 깊은 자각 없이, 과시적 소비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축하로 축소되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적 정신에 따라 성탄절을 축하하는 것은 삶의 세속화에 대한 저항, 신비가 희석되고 소멸되는 것에 대한 저항의 행동입니다.
‘말씀’의 육화는 인간 존재의 내용, 방향 및 목적을 계시합니다. 완전하신 하느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계시기에, 우리 인간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처럼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성 아타나시오스, 성육신에 관하여 54) 신학자 성 그레고리오스의 심오한 표현에 따르면, 인간은 “신이 되라는 명령을 받은”(성 그레고리오스, 성 대 바실리오스에 대한 추도사, PG 36,560) “신성한 존재”(성 그레고리오스, 거룩한 부활절에 관한 설교 44, PG 36,632)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존엄이며, 우리 인간에게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영광을 선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은 구원으로 부름 받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성 사도 바울로의 신학에 따르면, 하느님 앞에서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 3:28) 이것은 인류학, 가치관, 윤리적 인식에서 모든 것이 전복되는 거대한 반전입니다. 그 이후로, 인류를 모욕하는 사람은 하느님께도 대적하는 사람이 됩니다. “인간만큼 신성한 것은 없는데,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본성에 참여하셨기 때문이다.”(니콜라스 카바실라스, 그리스도 안의 삶에 관해 6, PG 150,649)
성탄절은 교회의 신성과 인성의 삶 전체를 구성하며, 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는 항상 존재하셨고, 현재 존재하시고, 또 앞으로 오실 분으로 계속해서 경험됩니다.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분은 “성부 아버지의 품에 있는” 분이고, 아기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고, 부활하시고 영광 속에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고, 의로운 심판관이시며 영광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이 표현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해 시편과 성가로 영광을 바칩니다. 이 신비는 우리가 섬기는 동시에 그분에 의해 섬겨져왔고 또 현재 섬겨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4차 칼케돈 세계공의회가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거룩한 교부들을 따르며” 밝힌 것입니다. 도시 중의 여왕인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정교회의 자랑이며, 전 세계의 영광인, 지극히 거룩한 성 소피아 대성당은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의 육신을 취한, 우리의 이성과 이해를 넘어서는 방법을 설명하는 “칼케돈의 교리”를 “찬양”합니다. 바로, 성당의 건축적 표현, 거룩한 공간의 구성 방식, 하느님의 자비가 천상과 지상의 모든 것을 연합하는 방식을 반영하는 인상적인 돔을 통해, 또 성화와 장식을 통해, 아름다운 채광이 나타내는 독특한 신학적 언어를 통해 이를 찬양합니다.
많은 사건과 슬픔 속에서 오늘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는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주님의 천사”의 목소리를 듣습니다.(루가 2:9-11) 우리는 위험과 질병에 처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며 성탄을 경축합니다. 우리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전염병에 맞서기 위해 돕고 기여하는 모든 이들의 헌신과 희생에 감탄합니다. 우리는 환자들이 어떤 숫자나 사례, 대상화된 존재 또는 비인격적인 생물학적 단위로 격하되지 않고, 거룩한 존재로 다뤄지고 존중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 기뻐합니다. 아주 고귀하게 표현되듯, 의사들의 “하얀 가운”은 “다른 이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1고린토 10:24), 내 형제를 위해 “내 것”을 내려놓음을 의미하는, 고통 받는 환자에게 완전히 헌신함을 의미하는 “하얀 사제복”입니다. 성직자의 사제복과 마찬가지로 이 “하얀 사제복”도 희생과 봉사 정신을 상징하고, 이 둘의 영감과 원동력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항상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며 결코 우리 자신의 성취가 아닙니다.
이 위험한 전염병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오던 많은 것을 산산조각 냈고, 현대의 “신격화된 인간”의 “거인주의(titanism: 인간 스스로를 ‘땅 위의 하느님’이라 느끼는 것)”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세계가 하나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의 문제점들은 다 공통된 것이며, 그 해결책은 공동의 행동과 의제를 필요로 한다는 반론할 수 없는 진실과 함께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각 개인의 헌신의 가치, 즉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준 인간의 기준을 능가하는 사랑의 가치입니다. 교회는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을 행실과 말로 적극 지원하고, 그들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을 돌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병자들의 치유가 –죽음에 대한 일시적인 승리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초월하고 죽음을 궁극적으로 사멸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2020년을 “젊은이들을 위한 사목적 쇄신과 관심의 해”로 정하고 여러 활동을 계획했지만, 안타깝게도 전염병 위기로 인해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젊은이들을 위해 계획된 활동들이 내년에는 실현 가능해지길 바랍니다. 젊은이들이 이해와 사랑으로 존중받을 때 그들은 창의적인 재능을 드러내고 이러한 활동에 열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결국, 청년 시기는 우리 인생에서 특히 “종교적인” 시간입니다. 이 시기는 꿈, 비전, 깊은 존재론적 탐색으로 가득 차 있으며 형제애가 넘치는 새 세상에 대한 활기찬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좋은 소식으로서 선포하는 것은 바로 이 “새 창조”(2고린토 5:17) – “정의가 깃들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2베드로 3:13)이며, 교회가 종말(하늘왕국)로 향하는 여정에서 묘사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과 축복받은 자녀 여러분,
교회에서 인간은 “도움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완전히 새롭게 됩니다. 교회에서 인간은 “진리 안에 살고” 자신의 신성한 운명을 경험합니다. 정교회의 거룩하고 위대한 공의회(2016)에서 선언된 대로, 교회에서 “각 인간은 하느님과 개인적으로 친교하기로 되어있는 고유한 실재를 이룹니다.”(회칙 12) 우리는 현재의 삶이 우리의 영원한 삶 전체가 아니며, 악과 부정적인 것들이 역사에서 마지막 단어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우리 삶에 개입하여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문제를 없애시는 동시에 우리의 자유까지 없애시는 “기계적인 분(deus ex machina)”이 아닙니다. 자유는 우리가 벗어나야 하는 ‘처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할 바 없이 다음의 교부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진리입니다. “구원의 신비는 구원을 강요받은 자들이 아니라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갈망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고백자 성 막시모스, 주기도문에 관해, PG 90,880)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의 진리는 부활로 가는 길인 십자가를 통해 시험 받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과 마음으로,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성탄부터 신현까지의 축일들을 경축하면서, 파나르(Phanar)의 거룩한 총대주교청에서 새해 인사를 보냅니다. 지극한 겸손으로 인간이 되신 구세주께서, 새해가 밝아 오르는 날과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날에, 건강, 서로에 대한 사랑, 모든 선한 일에서의 발전, 그리고 위로부터 모든 축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2020년 성탄절에,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열렬히 간청하는
바르톨로메오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