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로마-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이자 세계총대주교인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스가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그리고 우리의 기도와 축복과 용서가 온 교회와 함께 하길 빕니다.
모든 선의 수여자이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올해도 거룩하고 위대한 대사순절에 도달하였습니다. 주님의 도우심과 함께 기도와 금식과 겸손 안에서 우리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구세주 그리스도의 거룩한 수난을 살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경축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하기 위해, 금욕수행의 투쟁 경기장인 대사순절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수많은 혼란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정교회의 금욕수행의 경험은 매우 가치 있는 영적 자산이고 하느님과 사람에 대한 지식을 길어 올리는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금욕적 삶이다”라고 하듯 그 정신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적시는 복된 금욕은 소수의 사람 혹은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부여된 특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외 없이 모든 신자를 위한 공동의 선, 공동의 복, 공동의 소명입니다. 물론 금욕수행의 투쟁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닙니다. “금욕수행을 위한 금욕수행”의 원리는 타당치 않습니다. 목표는 자신의 의지와 “육체의 정욕”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다시 중심을 잡아주고,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남이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I 고린토 10:24)라는 성경 말씀을 따라서, 개인적인 욕망과 ‘권리’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정교회가 걸어온 긴 역사적 여정에서 두드러진 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거룩한 성녀들의 이야기와 말씀을 모아놓은 책인 ?네온 미테리콘?에서,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기’를 포기하는 이 영적 기풍에 대한 놀라운 묘사 하나를 발견합니다.
“어느 날 은둔 수도자들이 성녀 사라를 방문했습니다. 성녀는 그들에게 필요한 음식이 담긴 바구니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수도자들은 좋은 것은 다 제쳐두고 상한 것만 먹었습니다. 이를 본 복된 성녀 사라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참된 은둔 수도자들입니다.’”
자유를 이렇게 이해하고 희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 우리 시대에는 이상스러워 보입니다. 우리 시대는 자유를 개인적인 요구들과 자신의 고유한 권리에 대한 주장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의 ‘자주적인’ 인간은 분명 상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먹었을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자유를 표현하고 그 자유를 참되고 책임 있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자유에 대한 정교회의 인식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보여주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자유는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자유입니다. 내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는 자유입니다. 자립과 자족이 현대인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에서 사람을 해방시켜주지는 못할 것임을 우리 정교회 신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십니다.”(갈라디아 5:1) 자유는 인간의 창조적 힘들을 동원합니다. 자유는 또한 자기 안으로의 칩거를 단연코 거부하는 것으로, 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삶으로, 또 생명을 살리고 친교하는 삶으로 실현됩니다.
정교회의 금욕적 기풍은 어떤 분리도 이원론도 알지 못합니다. 이원론과 세상의 거부는 그리스도교에 합당한 사상이 아닙니다. 참된 금욕수행의 정신은 밝게 빛나고 자애롭습니다. 정교회의 자기 이해를 특징짓는 것은 금식 기간이 십자가와 부활로 빚어지는 기쁨으로 젖어있다는 것입니다. 정교 신자들의 금욕수행의 투쟁은, 정교회 영성과 전례적 삶이 또한 그렇듯이, 향기를 발하고 부활의 빛을 비추어줍니다. 십자가는 정교 신앙의 중심에 있지만 교회의 삶의 궁극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교회의 삶에서 궁극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로 형언할 수 없는 부활의 기쁨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이 기쁨으로 우리를 인도해줍니다. 그래서 대사순절 기간에도 정교 신자들의 경험과 삶의 정수는 언제나 “모두 이들의 부활”에 대한 열망으로 모아집니다.
주 안에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님과 모든 성인의 중보로 우리를 도와주시길 하느님께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교회 전통의 규범에 순종하고 기뻐하면서, 욕망들을 멸하는 금식을 실천하고, 기도에 온전히 헌신하며, 또 고통 받는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서로 용서하고, “모든 상황에서 감사드리며”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실 방법으로 거룩하고 위대한 사순절의 긴 여정을 달려갈 수 있게 해주시길 하느님께 간구합시다. 그리하여 믿음을 가지고 우리 주 하느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두려우며 구원을 주는 수난”과 생명을 주는 부활을 경배할 수 있도록 합시다. 영광과 권세와 감사가 이제와 항상 또 영원히 우리 하느님 그리스도의 것이나이다. 아멘.
2019년 거룩하고 위대한 사순절에
✝바르톨로메오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