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브로시오스 대주교 2025 부활절 메시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부활절 조과 때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곧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았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뵙는 은총을 입었음을 확신을 가지고 선포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희생적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의 사랑을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 이 같은 질문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각 개인에게도 던져집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야,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린 손을 펼치시어 “서로 갈라져 있던 것들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손을 펼치셔서, 사람이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하셨고 또 다른 사람들과도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참된 사랑의 기준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한 그리스도인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의 기준이 무엇인지 묻지 말고, 그저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요한 13,1)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행동으로 증명해보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길은 오직 이웃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다른 방법이나 길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길만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가 모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기준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 복음사가는 서신을 통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 요한 4,11)

우리는 부활절 조과 말미에 성가를 통해 “서로 얼싸안읍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사람을 ‘형제’라고 불렀으니, 교회는 우리에게 “부활로 모두를 용서합시다”라고 권면했습니다. 여기서 거룩한 성가 작사가가 사용한 ‘모두’라는 단어는 과장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원수’를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 가득한 우리의 마음 안에, 모든 사람이 빠짐없이 들어와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두를 용서’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용서한다는 것은 ‘공간을 내어준다’는 의미, 내 마음을 넓힌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즉, 나와 다른 사람, 반대되는 사람, 낯선 사람, 심지어 나를 아프게 하고 해친 사람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열어야 함을 뜻합니다. 다른 이들의 연약함과 특이성을 넓은 아량과 존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과 용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반면 미움은, 우리가 악마의 영감에 따라 살고 있으며 그를 아버지로 삼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악마는 미움을 통해 사람들 간의 사랑을 파괴하고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적인 미움 때문에 돌아가셨지만(마태오 27,18),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해 미움을 파괴하시고, 세상에 다시 사랑을 가져오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나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완전한 사랑, 무한한 자비, 헤아릴 수 없는 자애로움을 가지신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네. 죽음으로 죽음을 멸하시고 무덤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베푸셨나이다”라는 찬송을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용서를 실천할 때,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 마음속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무엇보다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는 것”(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여, 하느님은 덤불 뒤에 숨어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산을 오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당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할 때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때마다 스스로 당신을 찾아오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강요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할 때 저절로 이끌려 오는 것입니다.”(에섹스의 성 소프로니오스)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두 가지 사랑, 즉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른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주를 사랑하여라.”(신명기 6,4-5)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위기 19,18) 이렇게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 전체가 부활의 축제가 될 것입니다. 그때야말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삶의 참된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과 교회의 중심인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 안에서 함께하는 성직자들, 수도자들, 신자들, 새로 세례를 받은 이들, 교리 교육을 받는 이들, 그리고 모든 협력자를 대신하여, 여러분과 가족분들의 삶이 항상 부활의 빛 안에서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부활의 자녀들’(루가 20,36 참조)이 되시기를, 영혼과 육신이 건강한 가운데 언제 어디서나 사랑을 퍼뜨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니, 그분의 참된 말씀대로, 여러분도 반드시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한없는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한국의 대주교이자 일본의 엑사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