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축일
Rev. George Mastrantonis
축일의 발전
오늘날 우리가 경축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주요한 사건들을 경축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초기부터 제정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어떤 특정한 날짜와 성가를 연관시키지는 않으면서 교회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진정한 사건으로서 그 사건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기념했던 것입니다. 이후에 교회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신자들이 자유롭게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교회는 매년 교회의 삶의 다양한 사건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사건들을 연중 축일로 정하여 그분을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기도와 성가와 말씀 봉독으로 찬양하고 기념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다만 초기 교회의 첫 신자들이 이를 지키고 경축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박해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3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는 카타콤이라는 지하에 있었습니다. 이곳, 즉 땅의 꽃과 수풀 아래서 신앙과 찬양의 나무가 자랐습니다. 교회는 거창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왕국을 신자들의 가슴 속에 확대시켰습니다. 이 미로와 같은 땅 속 카타콤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태어나는 장소였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그들이 삶을 마치고 묻히는 곳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교회를 “진리의 기둥이며 터전”으로 만들어 왔던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투쟁과 신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첫 3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명확한 교회의 양심을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내부의, 또한 외부의 거짓과 싸우면서 수많은 희생으로 신앙과 찬양의 원칙을 정형화시켰고 지켜냈습니다.
첫 3세기 동안 교회는 땅 속에서 그 뿌리를 키웠고, 카타콤의 수분과 순교자의 피로 그 뿌리에 양분을 공급했습니다. 교회는 그 뿌리를 안티오키아에서 로마로 펼쳐나갔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에페소, 고린토, 테살로니카, 아테네도 헌신과 희생의 횃불로 그리고 그리스도인 인격과 양심의 양성으로 덥혀지고 밝아진 그리스도교 신앙의 땅 속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결실의 시간이 왔을 때, 즉 뿌리가 그 썩지 않는 줄기를 땅 위로 내어놓을 준비가 되었을 때, 그 때 하느님의 섭리로 정치적 환경이 조성되었고 범상치 않는 인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스 대제, 그는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신앙과 찬양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다. 이 정략적인 행위는 황제에 의해 시작되었고 적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체들 간의 사랑이라는 힘으로 무장하고 방어와 선교적 열망을 박해를 피해 숨어있는 피신처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교회는 자유롭게 그 교리를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처음 관심은 신앙을 승인하고 지체들을 양육하는 기도와 찬양을 발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4세기가 교회의 지하 생활과 이후 지상 생활에서의 일련의 과정을 연결시키는 황금의 시기가 되는 이유입니다. 신현축일과 성탄절의 경축, 신성한 전례의 저술, 신경을 통한 신앙의 정형화 등 많은 일들이 4세기에 일어났고, 이 영속적 토대들은 앞서 존재했던 뿌리에서 피어난 꽃처럼 발전했습니다.
교회의 삶은 오늘날까지 이들 시들지 않는 꽃의 향기를 지켜왔으며, 이 향기는 현재 우리가 숨쉬는 값진 그리스도교 대기를 문명 사회에 선사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우리의 손과 가슴에 이 등불과 횃불을 들고 있습니다. 이 빛은 가슴으로 신앙의 유산을 물러주었던 카타콤의 사람들에 의해 타올랐던 그 램프와 횃불로부터 전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