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지상에 내려오시고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요한 1:24) 성탄절을 하느님의 은총과 무한한 자비로 올해 다시 한번 맞게 되었습니다.
인류를 절망으로 이끌었던 인간의 오만함 때문에 메시아께서는 지극히 겸손한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굴, 말구유, 가난, 피난, 수난, 십자가에서의 모욕 등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이자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다 견디고 참아내셨습니다. 인류 첫 조상의 타락으로 상처를 입게 된 인간은 오직 이렇게 지극히 겸손한 방법으로만 바로잡아지고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는 것을 수락하셨습니다. 당신께는 어울리지 않지만 전부 값싼 원소들을 갖추어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바로 인간의 오만함을 짓밟기 위해서였습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스, ΕΠΕ 6:16)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겸손한 사람에게만 오셔서 «머무십니다.» 오직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만이 하느님 사랑의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에페소 2:4) 당신의 부유함으로써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당신의 «비우심»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가난하심으로, 우리를 풍요롭게 하십니다. «성육신 신비의 신학적 중요성에 대한 이해»라는 큰 선물을, 세속적 의미에서 부유하고 힘세고 영향력 있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성령의 어부들»에게, 겸손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 선사하십니다. 이 헤아릴 수 없는 신비에 대해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다음과 같은 아주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비우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부유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셨는데, 그리스도의 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가난을 통해서 부유해지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가난해서는 부유하게 될 수 없다고 여러분이 생각한다면, 주님의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가난해지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은 부유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가난으로 부를 쌓은 매우 놀라운 경우입니다.»(ΕΠΕ 19:454)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신 그리스도시여, 당신께 무엇을 바치리이까?»(성탄절 만과 성가 중) 우리는, 우리가 가진 연약한 본성 중 그저 작은 일부분밖에는 당신께 바칠 것이 없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다정한 아버지로서 «내 아들아, 너의 마음을 나에게 다오.»(잠언 23:26)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나이다. 어떤 외형적인 것, 우리의 재산이나 학벌이나, 그밖에 다른 어떤 물건들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본질 그 자체를 원하시나이다. 당신은 우리 영육의 중심,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나이다. 우리의 마음은 욕망과 약점들로 가득하나, 당신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시고 성화시키시고자 그 마음 자체를 원하시나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늠할 수 없는 자애의 마음으로 당신이 내미시는 구원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여, 당신은 제 마음의 문 밖에 서서 마치 구걸하듯 문을 두드리고 계시나이다. 제가 그 문을 열면, 당신께서는 이미 약속하셨듯이 안으로 들어와 저와 함께 만찬을 나누실 것이나이다. 당신은 저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나이다. 제가 이 «찢어지고 터진 마음»에서 내어 바치는 것이기만 하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은 그것을 만찬으로 삼으실 것이나이다. 그리고 제가 당신께 «주여, 내 곁에 머물러 주소서»라고, 온마음을 다해 간절히 바라기만 한다면, 당신께서는 제 마음속에 영원토록 머무실 것이나이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코로나19라는 전세계적 전염병 속에서 보내고 있는 올해의 성탄절에는 모두 한번 자신을 반성하며 되돌아보아야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성탄절을, «자애로 창조하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성탄절 대만과 성가 중)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는 사건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않고 인식 없이 보냈는지를 말입니다. 얼마나 많이, 죄라는 끔찍한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그와 싸우기 위해 해야할 노력을 하지 않았는지를 말입니다. 얼마나 많이, 회개하는 마음과 죄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마음 없이 감사의 신비성사에 참여하였는지를 말입니다. 얼마나 많이, 우리의 이기심으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주변인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파괴하였는지를 말입니다.
우리 모두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서 진심을 다해 겸손해집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머무시기를 간청합시다.
피시디아의 소티리오스 대주교님과 모든 성직자들, 모든 신자들, 세례를 받고 새로 정교인이 된 이들, 예비신자들, 주님 안에서의 모든 협력자들을 대표해서, 여러분들 모두가 건강하시며, 그리스도께서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시기를, 그리고 가족들과 친지들과 축복된 성탄절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땅에 탄생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