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의 성탄 대축일 메시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하느님의 자비를 통하여 온 교회에 임하길 기원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영적 자녀 여러분,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 말씀이 육신으로 태어나신 축일에 이르렀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행복”과 죄 사함을 주시기 위해, 또 율법과 죽음의 행위로 유배된 우리를 해방하시기 위해, 그리하여 “아무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지 못할”(요 10:18) 참 생명과 커다란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사랑을 가져오시고”, “우리 자신보다 우리에게 더욱 친밀하게 되신” “지극히 완전하신 하느님”을 기쁨으로 영접합니다. 하느님 말씀께서는 자기 비움을 통해서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관대함”으로 우리에게까지 내려오십니다. “그 무엇도 그분을 담아낼 수 없지만” 그분은 동정녀의 태 안에 담기십니다. 가장 크신 분이 가장 작은 것 안에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가장 위대한 진리입니다. 어떻게 초월하시는 하느님이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 남아계시면서도 동시에 “인류를 위해 인간이 되셨단 말입니까!” 성 막심 고백자께서 말씀하고 있듯이 “하느님의 육화의 위대한 신비는 여전히 하나의 신비로 남아있습니다.”

“과거의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던”(골 1:26) 이 기이하고도 역설적인 사건은 인간의 신화라는 선물의 기초입니다. “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행 4:12)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다는 것, 우리의 부패할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개조된다는 것, 형상은 회복되고 닮음을 향한 길이 만백성에게 열린다는 것. 이것은 구원의 가장 고귀한 진리입니다. 하느님 말씀께서는 인간 본성을 수용하심으로써, 모두에게 공통된 하느님의 예정과 구원을 통해, 인류의 통일성을 확립하십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이 피조세계 전체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이신 성자의 육화 또한 피조세계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그리하여 “과거 어둠 속에 있던 이들이 빛의 자녀가 될 때, 피조세계는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성 대 바실리오스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을 “모든 피조세계의 공통된 축일로” “세상 구원과 인류 탄생의 축제”로 기념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불행하게도 폭력과 심각한 갈등과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 기본권의 멸시로 가득 찬 세상 안에, 다시 한 번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다.”는 말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2018년은 세계 인권 선언이 발표된 지 70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 선언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끔찍한 경험과 파괴 후에, 모든 민족과 나라가 확고하게 존중해야 할 공동의 고귀한 이상들을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의 인권 침해와 인권에 대한 의도적 왜곡들이, 그 이상들에 대한 존중과 실현을 약화시키는 가운데, 이 선언은 지금도 계속해서 무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계속해서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거나 배우길 원치 않습니다. 폭력과 인간의 가치 하락이라는 비극적 경험도, 고귀한 이상들에 대한 선언도, 폭력과 전쟁의 지속, 권력에 대한 찬양, 타인에 대한 착취를 막지 못했습니다. 또한 기술의 지배, 과학의 놀라운 성취, 경제 발전도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사회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우리 시대에 부자들의 방탕은 증대되고 세계화는 사회적 화합과 조화의 조건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위협들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성 니콜라오스 카바실라스께서 말씀하고 있듯이 “인간 존재만큼 거룩한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 자신이 인간의 본성을 나눠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참된 평화는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그리고 하느님 말씀의 육화라는 초월적 신비와 인간의 신화라는 선물이야말로 자유에 대한 그리고 인류의 거룩한 숙명에 대한 진리를 드러낼 것임을 숙지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인간의 자유와 정의를 보호하기 위해 싸웁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자유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의 정점에는 “사욕을 품지 않는”(고전 13:5), “맑은 양심에서 우러나오는”(딤전 1:5)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 자기 자신의 뜻을 추구하는 사람,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 자기 힘으로 신화를 이루려는 사람, 자기 자신을 칭송하는 사람은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과 개인주의적인 자기애와 자기만족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타인을 단지 개인적 자유의 억압으로 여깁니다. 반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항상 이웃을 향해 있고, 언제나 타인을 향해 정향되며, 늘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합니다. 신자의 목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감사의 정신 안에서 “그리스도의 권리들을 따르고 충만하게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사랑으로서의 자유요 자유로서의 사랑에 관한 이 진리는, 인류의 미래를 떠받치는 주춧돌이요 확고한 보장입니다. 이 영감어린 기풍 위에 기반을 둘 때, 우리는 우리의 행복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존조차도 위협하는 현대 세계의 거대한 도전들에 맞설 수 있습니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에 관한 진리야말로, 현대의 ‘신이 된 인간’에 대한 대답이고, 크레타에서 열린 거룩하고 위대한 정교회 공의회에서 선언된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증표입니다. 공의회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정교회는 현대 세계의 ‘신이 된 인간’ 대신에, 모든 것의 궁극적 기준이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을 내세운다. 우리는 ‘신화된 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되신 하느님’에 대해 말한다. 교회는 인간이 되신 하느님과 그분의 몸인 교회라는 구원의 진리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자유 안에서의 삶의 장과 방식으로서, 그리고 지금 여기 지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드러낸다.”

하느님 말씀의 육화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으로서의 역사를 인도하신다는 확증이요 확신입니다. 물론 하느님 나라를 향한 교회의 여정은 역사적 현실 혹은 역사의 모순이나 모험과 무관하게 동떨어져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많은 어려움과 함께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진리를 증언하고 것, 거룩하게 하고 변모시키고 사목적인 돌봄을 베푸는 사역을 완수해가는 것은 바로 이 모든 곤경 속에서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께서 말씀하고 있듯이 “진리는 교회의 기둥이요 지반입니다. … 우주의 기둥은 교회입니다. …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위대한 신비, 경건한 신앙의 신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된 여러분, 그리고 영적 자녀 여러분,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느님 말씀의 은총으로, 그리고 환희와 충만한 기쁨으로, 우리 함께 12일간의 그리스도 성탄 대축일을 경축합시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청에서 우리는, 만백성을 향한 관대하심으로 육화하신 우리 구세주께서, 다가오는 새해에도 모두에게 영혼과 육체의 건강과, 서로 간의 평화와 사랑을 베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시고 찬양받으시는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그분의 거룩한 교회를 보호해주시고, 교회의 모든 사역 위에 강복해주실 것입니다.

 

2017 그리스도 탄생 대축일

하느님 앞에서 여러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