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대교구 의회가 1월 21일(주일) 오후 3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되었습니다. 1부에서는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린토 전 9:16)라는 주제의 사목 지침이 발표되었고, 2부에서는 대교구 및 각 성당의 2023년 영적 사업 및 재정 결산, 2024년 영적 사업 계획 및 재정 예산과 기타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하였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올해에도 한국 정교회의 발전과 신자들의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길 기도합시다.
제20회 대교구 의회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대주교 사목 지침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린토 전 9:16)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모두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올해 우리는 세계 총대주교청 관할 한국 대교구 및 일본 엑사르히아의 설립 20주년(2004-2024)과 초대 한국 대주교 및 일본 엑사르호스 故 소티리오스 대주교의 착좌 20주년을 기념합니다. 이번 기념일은 한국 정교회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교회 구성원들의 질적, 양적 성장을 위한 역동적인 노력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대교구 의회 주제로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린토 전 9:16)라는 바울로 사도의 구절을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부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교는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모두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먼저 바르톨로메오스 세계 총대주교님의 인사와 축복을 여러분 모두에게 전달합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장수하시고, 모든 영적 발전, 물질적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시며, 또 우리 대교구 의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십니다. 그럼 이제, 의회의 중심 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024년 우리의 모든 활동의 축이 될, ‘정교회 한국 대교구 및 일본 엑사르히아’의 제20회 대교구 의회 중심 주제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울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린토 전 9:16) 이는 우리가 주변에 정교회 증언을 더 널리 확산시키는 일에 관련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 활동은 교회에게 ‘숨’이 됩니다. 모든 생명체가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선교 활동이 없으면 지상에 세워진 교회의 몸에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본성적으로 “하나이고, 거룩하며, 공번적이고, 사도로부터 이어옵”니다. 교회의 사도적 성격은 세상에서의 교회의 사명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목적이 없는 교회”(알바니아의 아나스타시오스 대주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선교 활동은 선택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과 우리 각자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주님은 강한 어조의 동사 두 개를 명령형으로 사용하시며 우리에게 이 계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코 16:15) 가장 중요한 정교회 성서 신학자일 것이라 여겨지는 미국의 전임 대주교 디미트리오스 대주교님은 이 매우 중요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설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지체하거나 부연 설명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전례 없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전 세계가 처음으로, 지리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사도들의 선교 활동이 수행되어야 할 광활한 대상이 되었습니다. 메시아는 더 이상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된 메시아가 아닙니다. 온 세상이 그분께 속하게 됩니다. 온 세상과 모든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활동 공간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디미트리오스 트라카텔리스(미국의 전임 대주교), Authority and Passion, Athens, Domos, 1983, 265) 바울로 사도는 이러한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활동이 필수적이라고 여깁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고린토 전 9:16) 그렇기 때문에 바울로 사도는 자신의 제자인 디모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강력히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십시오.”(디모테오 후 4:2)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묻습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선교할 때를 정해놓지 말라는 뜻입니다. 언제라도 여러분에게 적절한 때가 되도록 하십시오. 평안할 때나, 고요할 때, 성당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위험에 처해 있을 때도, 감옥에 갇혀 묶여 있을 때도, 또 죽음을 향해 가는 중이더라도, 언제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크리소스토모스, 디모테오 후서에 관하여, 설교 9, ΕΠΕ 23:634)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선교 활동의 진전이 크게 좌우되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은 선교(복음 전파)에 대해 들으면, 우선 이것이 성직자, 그것도 미혼 성직자, 또 신학을 공부한 자들에게만 해당되고 전체 교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언변의 능력이나 복음 전파에 필요한 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선교를 위해 일하는 것을 주저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우리 교회의 전통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4세기 출신으로서 그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여겨지는,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이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 살펴봅시다. 성인은 자신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설교에서 들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선교적 책임이 있다는 것과, 이웃의 구원에 대한 관심은 ‘말솜씨’나 ‘많은 지식’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인상적인 방법으로 설득합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복음을 가르치는’ 최고의 임무에 대한 소명과 의향이 없는 이들이라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할 책임에서 면제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이 주제에 대한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의 특징적인 구절 세 가지를 인용하여, 이 부분을 더 잘 이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성인은 경제 생활에서의 훌륭한 예를 들며, 모든 사람이 설교에서 들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복음 전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은행가들이 돈을 받아 다른 사람에게 분배하지 않고 집에 보관해 두기만 하면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모두 사라집니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당신이 설교를 통해 가르침을 받은 후에, 그것을 자기 안에만 간직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재산 전체가 사라질 것입니다.”(크리소스토모스, 설교를 듣는 자들의 침묵에 대하여, ΕΠΕ 26:314)
두 번째 구절에서 요한 성인은 청중들에게, 교회 설교에서 들은 내용을 가까운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원수에게까지도 전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교회의 설교를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아이는 아버지로부터, 하인은 주인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또 이웃들끼리 서로 나누어야 하고 친구들끼리도 나누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수에게까지 가르침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들의 구원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크리소스토모스, ‘나는 주님께서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PG 56, 142)
성인의 세 번째 구절에서는, 누군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할 수는 없을지라도 ‘설교’의 지위를 갖는 조언을 해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강조됩니다. “당신은 웅변의 능력이 없나요? 어휘력이 풍부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당신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아이, 이웃, 친구, 형제, 친척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거나 설교할 수 없다면,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조언해주면 됩니다. 여기에는 훌륭한 말솜씨도 필요하지 않고 많은 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말솜씨가 훌륭했다면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을 것임을 그들에게 보여주십시오.”(크리소스토모스, 히브리 서신에 관하여, 설교 3, PG 63, 34.) 선교 활동을 위해 “일반적인 사람들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요한 성인의 주장은,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는 일”을 했던 옛 시대 여성 신자들의 예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크리소스토모스, 마태오 복음서에 관하여, 설교 73, PG 58, 677)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예시로 살펴본 성서와 교부들의 풍부한 가르침을 통해, 복음 전파에 대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거룩한 책임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어서, “주님의 말씀이 속히 퍼져서 찬양받도록”(데살로니키 후 3:1)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몇 가지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다른 사람에게 선교할 때 필요한 필수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자신의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최우선 관심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한 영적인 투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한 매일의 투쟁,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갈라디아 4:19) 계속되는 투쟁,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투쟁이 필요합니다.
2. 이렇게 하면 우리의 삶과 모범으로써 우리 주변에 그리스도가 빛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우리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그리스도에 관한 우리의 무미건조한 말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이론적 신념이 그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아무에게도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마약에 중독되어 있으면서, 남들에게 자신은 마약에 반대하며 모두 마약을 멀리해야 한다는 말을 과연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예로, 여러분이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복음에서 말하는 사랑에 관해 알려주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먼저 변모되지 않았으면서, 다른이더러 그리스도 안에서의 변모를 위해 투쟁하라고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신학자 성 그레고리오스는 우리에게 이 위대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지혜롭게 된 다음, 다른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밝히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빛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하느님께 가까이 인도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 주변과 세상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먼저가 거룩해집시다. 다른 이의 손을 잡아 인도하고, 진지함과 분별력을 가지고 조언합시다.” (그레고리오스 신학자, 폰토스로 떠난 것에 대한 설명, 설교 2, 71, ΕΠΕ 1:164)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우리가 어떻게 모범으로써 다른 이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지 이해하도록 아주 아름다운 실제적인 예를 제시합니다. “… 친절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십시오. 누군가 당신에게 욕했습니까? 당신은 이에 대해선 침묵하도록 하고, 할 수 있다면 그를 칭찬하십시오.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되고, 선함과 온유함을 가르치는 것이 됩니다. 나는 신체적 상처보다 언어적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체적 상처는 육체가 받는 것이지만, 언어적 상처는 영혼이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처받지 맙시다. 아니면 상처받더라도 동요하지 말고 인내심을 보입시다.” (크리소스토모스, 사도행전에 관하여, 설교 31, ΕΠΕ 16Α:230)
3. 행동과 모범을 통해 증언을 전한 후에는 말로서 증언을 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 즉 행동으로서 보이는 모습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할 수 있는 선교 방법입니다. 두 번째 방법, 말로서 하는 선교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지식과 자격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체계적인 교리교육을, 이 거룩한 사업을 위해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말씀의 증언’이라는 용어는 체계적인 교리교육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앙을 용기있게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정교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교회에 관해 신중한 방법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서, 정교회 서적, 또는 이와 관련된 발간물을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분별력 있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의 마음이 ‘비옥한 밭’이라면 그를 정교회 신앙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또, 친구나 지인을 우리 성당으로 초대하여 예배나 행사에 참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을 방문하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 성당에 처음 오는 분들이 낯설지 않게 느끼도록, 그분들께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과 그 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이러한 종류의 일에는 특별한 신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열정과 관심이 필요할 뿐입니다.
4. 우리가 하는 정교회 증언은 분명 우리의 가족과 친척에게 제일 먼저 향해야 합니다. 즉, 먼저 우리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바울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친척,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는 벌써 믿음을 버린 사람이고 비신자보다도 못한 사람입니다.”(디모테오 전 5:8)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우리가 사도 바울로의 말씀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바울로 사도가 의미하는 것은 영혼과 신체에 관한 모든 염려와 보살핌을 뜻합니다. … 누군가 혈연으로 맺어진 친척들을 신경쓰지 않고, 영적인 관계로 연결된 자들도 등한히 여기면서, 어찌하여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낯선 사람들에게 친절함을 베풀 수 있겠습니까? 낯선 사람에게는 유익을 주면서 자기 사람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 참으로 헛된 일이라고 모두가 말하지 않겠습니까? 낯선 사람들에겐 신앙에 대해 가르치면서, 친척들은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친척들이야말로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고, 그들에게 유익함을 더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러하니,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사람들을 간과하니 박애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해도 과연 틀린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크리소스토모스, 디모테오 전서에 관하여, ΕΠΕ 23:352)
5. 우리 가족과 친척 다음으로 선교적 관심을 보여야 할 사람은 이웃이어야 합니다. 이웃은 우리와 같은 지역에 살면서 누구보다 많이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웃의 구원에 대해 신경쓰고 돌봄으로써 그들에게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집 주변과 각 성당 주변에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 전주 성당 주변에는 새로운 이웃들이 많고, 서울과 인천 성당에도 앞으로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새로운 주민들이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선교지가 나날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문제에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친척, 이웃, 친구, 직장 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교회 신앙을 전파한다고 할 때, 그들을 강제로 개종시키자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닙니다. 정교회에서는 이런 식의 개종을 선교의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폭력적인 방법이나 부당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면서 우리의 말을 듣고 싶어하는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향할 따름입니다.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전한 복음적 초대 “와서 보십시오.”(요한 1:46)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으라.”(마태오 28:19)는 주님의 계명을 우리가 실천에 옮겨서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6.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선교 대상은, 가족이든 아니든, 우리 주변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입니다. 정교인 부모, 조부모, 대부모, 친척들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로 인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 사회에서 교육에 종사하는 이들은, 교실이나 강의실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을지라도, 자신들의 그리스도교적 행동과 모범을 통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학생들이 언젠가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7.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가까이 데려가는 방법 가운데 가장 큰 힘이 있고 가장 효율적인 것은 ‘기도’입니다. 비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세상 구원에 대해 큰 사랑과 선교적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이 세상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고귀한 피를 흘리셨습니다. 아토스 성산의 실루아노스 성인은 온 세상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아담으로부터 세상 끝날까지 당신의 모든 백성이 당신을 알게 하시고, 당신이 얼마나 선하시고 얼마나 자비가 충만하신지 알게 하소서.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당신의 평화를 누리고 당신 얼굴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기도에서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당신께서 어떤 놀라운 삶을 선사해 주시는지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알게 하소서. 자비로우신 주여, 당신께 간청하나니, 아담으로부터 세상 끝날까지 당신의 모든 백성이 당신을 알게 하시고, 당신이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로운 분인지 알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가 교회 밖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확장되어 있고 또 그 온도가 뜨겁고 열렬하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한국의 교회에서도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고대 교회 때도 기적을 행하셔서 “주님의 말씀이 줄기차게 퍼져 나가고 점점 더 세력을 떨쳤”던(사도행전 19:20)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 한국 정교회 대교구와 일본 엑사르히아 설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우리 모두가 교회법적으로 설정된 관할권 내에서 정교회 증언을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할 때에만 의미와 목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당들 주변에 조성되는 새로운 환경들은 도전이며, 동시에 새로운 이웃 선교를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한 말을 항상 기억합시다. “태양이 온 땅을 지켜보는 것처럼 설교도 모든 곳에 퍼져야 합니다.”(크리소스토모스, 유대인에 대한 비판, 말씀 5, ΕΠΕ 34: 288). 아멘.
2024년 1월 21일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일본 엑사르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