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총으로 지난 1월22일(수)에 서울 한국정교회 대교구청에서 개최한 제16회 대교구의회를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성직자들과 각 성당 신자 대표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20년 한국정교회 대교구 주제는 ‘친교 – 마음의 길’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하느님과 우리 형제들과 얼굴을 마주 보면서 친교를 나누는 한 해가 되도록 합시다.
2020년 제16회 대교구의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님 말씀 중심 주제 :
마음의 길 — 친교
“그들은 모두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 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행전 2:42)
우리 교회의 교리적 가르침에 따르면, 성서에 명시된 바와 같이, 하느님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성부 아버지, 성자 예수, 성령, 세 위격이 친교를 이루고 있습니다. 본질은 하나이지만 위격은 셋입니다. 삼위일체의 세 위격은 서로 지속적이고 완전한 친교 안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들의 신은 단일 위격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의 하느님은 세 위격을 지닙니다. 이 세 위격들이 서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세 위격이 함께 이야길 나누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창조하고, 모든 것에 있어 함께 협력합니다.
이는, 다른 경우에서보다, 첫 피조물들이 창조되는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습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우리와 닮을 수 있도록 하자!”(창세기 1:26) 삼위일체 하느님은 첫 조상 아담을 만들어 낙원에 살게 하신 뒤,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닮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리라.”(창세기 2:18) 그리하여 우리의 첫 조상 하와가 창조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도록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비록 낙원이라는 이상적인 조건 속에서 살았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은 그에게 동반자이자 협력자인 하와를 주셨습니다.
첫 피조물들이 타락한 뒤, 사람들 간의 친교성이 훼손되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죄로 인해 하느님과의 친교가 단절되었을 때, 그 결과로 그들의 자식들 사이에 적대 관계가 생겨났습니다. 인류의 첫 살인 사건, 즉 친형제 카인에 의해 아벨이 살해당한 사건은 인류의 대인 관계에 혼란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까지, 그리스도 이전에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인류 역사에는 피의 강물이 흐르는 전쟁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침내 오셨고, 당신의 거룩한 피로써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의 목적은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요한 11:52) 사람들을 하나의 몸,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12:12-27 참조)
지상에 있는 창조되지 않은 교회는 하느님과 사람들의 친교입니다. 하느님과 사람이 함께 있는 구조입니다. 하느님하고만 있거나, 사람들하고만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런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가족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이 아버지이고, 신자들이 그분의 자녀가 되는 가족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공통되는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같은 아버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모두 형제지간입니다.
죄인이고 지상의 존재인 우리들을 합당케 해주셔서 우리가 공동의 거룩한 잔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모시게 되는 신성한 감사의 성사는, 특히 우리들 간의 일치와 친교의 성사입니다. 한 가족의 친형제들이 서로 같은 피를 나눈 것처럼, 거룩한 성체성혈을 받아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예루살렘의 끼릴로스, 까띠히시 4:1) 신자들끼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됩니다.
하느님과 사람들 간의 일치와 친교의 신비는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사도행전 2:42)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신성한 감사의 성사와 사도들의 가르침 속에서 서로서로 진정한 형제적 친교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초대 교회의 이러한 모범을 사도들, 사도 교부들, 그들의 전승자들의 설교에 의해 세워진 모든 지역 교회들이 따랐습니다. 교회의 목적은 분명하게 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친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교입니다.
이것이 2020년에 설립 120주년을 맞는 우리 한국정교회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우리가 한국정교회 대교구의 일원이라면, 자기성찰적 태도로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요 아버지로 하고, 모든 신자들은 지체(肢體)요, 영적으로 형제를 이루는 한 가족임을 믿고 있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서로서로 의사소통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가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의사소통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이 ‘몸’의 지체가 아니라는 것이 아주 분명해집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한국 사람이든 외국 사람이든)을 “우리의”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라고 여긴다면, 그래서 그들에게 말을 걸거나 그들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교회’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다른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로의 다음과 같은,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고린도 전서 12:26-27)라는 말씀이 우리의 가슴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 주제는 우리의 영적 진보와 우리 교회의 발전에 다양한 영향을 미칩니다. 한번 자문해봅시다. 매주일과 축일에 성당에서 만나지만, 혹시 한 번도 말을 나눠보지 않은 신자가 있는지요? 혹시 수십 년 동안 예배 후 “사랑의 오찬”에 자리해 식사를 하고 있지만, 한 번도 말을 나눠보지 않은 분 옆에 앉아 함께 식사하면서도 서로 대화해볼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은 없는지요? 혹시 우리 교회에 처음 오는 분들이 교회의 이처럼 환대 없는 분위기에 실망감을 느꼈던 건 아닌지요? 혹시 새로 세례 받은 신자들이 우리의 이런 형제 같지 않은 태도가 문제 같다고 느껴서 떠나간 건 아닌지요? 혹시 우리의 이런 태도를 자녀들이 배우고 똑같이 따라 해서 미래에 희망이 없는 건 아닌지요?
2020년의 중심 주제인 “마음의 길 – 친교”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전자 매체가 극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현대 사회는, 전자 매체들의 폭풍우 속에서, 공동체 중심의 모습에서 개인 중심적이고 고립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마태오 24:12 참조) 바르톨로메오스 세계총대주교께서 말씀하시듯, “사랑은 언제나 특정한 사람과의 구체적인 관계이며, 살아있는 공존이고, 대화이고, 협력입니다. 사랑은 가상공간에서의 추상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이메일 교환과 이미지 교환을 통해서는 발전되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것’과 ‘인터넷’은 친교와 사랑을 식게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이루어지는 인격적인 친교가 영혼이 없는 “디지털 의사소통”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매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가상의 의사소통과 가상의 현실에 중독되어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의사소통은 외면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는데, 그들과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의사소통을 할 만한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이성과의 결혼을 통해 영구적이고 합법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보다 혼자서 살아가기를 선택하면서, 외로움이라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이, 사람이 아닌 전자 화면이나 애완동물과 함께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은 우리에게 “혼자서 애를 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이 낫다.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겠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일으켜줄 사람이 있어 좋다. 외톨이는 넘어져도 일으켜줄 사람이 없어 보기에도 딱하다.”(전도서 4:9-10)라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도 이에 대해 말합니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휴식을 취할 수도 없다. 하지만 둘이 함께라면 재난 속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PG 52:4) 주님께서 고립된 개개인이 아닌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당신의 신성한 현존이 있을 거라 약속하시는 것은 매우 특징적입니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18:20) 누구든지 교회와 형제들의 공동체 밖에서 혼자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은, 고독과 고립의 지옥에서 살면서 스스로를 파괴할 위험에 처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앞서 말씀드린 것들을 마무리하면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관한 말씀을 되풀이 해보겠습니다 :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행전 2:42) 올 한 해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처럼, 첫째로는 교회의 설교 말씀에, 둘째로는 우리들 간의 친교에, 셋째로는 신성한 감사의 성찬에의 참여에, 넷째로는 기도에 우리 모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해봅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하루하루가 거룩해질 것이며, 우리는 “하나로 연합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복음의 교리를 위하여 한마음 한 뜻으로 굳게 서서 분투하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필립비 1:2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