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힘은, 이렇게 인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적을 맞이하고 있는 힘들고 예상치 못한 날들과 시간에, 성당에 촘촘히 모였을 때 자신은 젊은이처럼 건강하여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은 위험하지 않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습에선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솔로몬 성전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내려서 당신의 능력을 보이라는 두 번째 유혹에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마태오4:7)라고 말씀하시면서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의 힘은, 교회의 자녀들이 세상 건강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고, 위기의 시기에 성당에 가지 않고 그들의 가정에서 기도할 때 드러나 보일 것입니다. 모든 가족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감동적인 모습이 있겠습니까?
교회의 힘은, 각각의 지역의 “가정에서” 기도하는 것에서 드러나 보일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인 주님의 말씀에 따라 “골방”(마태오6:6)에서 기도하고, 수도생활의 전통에 따라 수도사들이 “자신들의 방”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성당이 없을 때로 신자들이 각 가정에서 모여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하나의 교회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묶여있던 사도 베드로를 자유롭게 하여 예루살렘의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사도행전12:12)라는 말씀처럼 “가정” 교회의 힘을 상기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교회의 힘은, 대사순절 기간에 자주 성체성혈성사를 영하려는 신자들이 있을 때 드러나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성사들에서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사랑으로 성체성혈성사의 결핍을 강한 인내심으로 받아들일 때도 드러나 보입니다. 초대교회 때의 수도사들을 상기합시다. 수도사들은 대사순절이 시작하면, 자신들의 거처를 떠나 사막의 더 깊숙한 곳으로 가서 기도와 금욕의 수도생활을 계속하다가, 성지주일에 성체성혈성사를 영하고 모두 함께 성대주간과 부활을 경축하기 위해 라자로 부활 토요일에 자신들의 수도원으로 돌아옵니다. 성체성혈성사의 결핍에도 사막에서 홀로 수도생활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성인이 되었습니까!
교회의 힘은, 교회의 신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주변사람들에게 봉사할 마음이 있는 것에서 드러나 보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시기에 교회는 항상 성직자들, 수도사들과 평 신자들로 구성된 자선을 위한 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래의 초대교회 때의 예시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도시는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족들 버리고 살기위해 산이나 사막으로 떠났습니다. 교회 역사가가 기록하길,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도시에 …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천사처럼, 전염병을 무시하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이 나았고 몇몇 그리스도인-천사들이 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힘의 증언입니다. 세상을 위한 희생입니다! 이것이 정교회의 윤리입니다. 우리는 이 전통과 함께 교회로부터 자선과 사회적 돌봄이 이루어지는 것을 초대교회와 천년 비잔틴시대의 교회로부터 받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신자들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본받는 모본이 되어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전염병의 문제를 대처하는 데 대한 정부의 지침을 지키지 않고, 또는 다른 사람들의 건강에 대해 무모한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가정에서 세상에 대해 애도와 회개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줍시다. 이것이 교회의 살아있는 힘입니다. 부활절 잘 보내십시오!
✝암브로시오스 한국대주교